경찰 조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까 대답했는데 왜 또 물어보지?
같은 사건을 시간만 바꿔 묻거나, 조금 전 설명한 내용을 다시 질문하면 경찰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면담에서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가 반드시 거짓말을 잡아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경찰에게 중요한 것은 진술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경험한 사건을 가능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처음부터 사건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기억은 녹화된 영상을 다시 재생하는 것과 다릅니다.
특히 갑작스러운 범죄나 사고를 경험하면 당시에는 특정 행동에만 주의를 집중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순서나
세부내용이 불분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사람이 갑자기 저를 때렸어요
라고 진술했더라도 이후에는 경찰이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상대방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느 손으로 어떤 부위를 때렸는지 등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같은 답을 반복해서 듣기 위해서라기보다 처음의 짧은 설명을 구체적인 사건의 흐름으로 확장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2. 같은 사건을 다른 방향에서 확인하기도 한다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장면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말다툼을 하다가 맞았다고 진술했다면 경찰은 그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왜 만났는지, 말다툼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폭행 직후에는 무엇을 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사건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앞선 진술과 다른 부분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술이 조금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거짓말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기억에는 자연스러운 누락이나
변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를 추가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3.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항상 좋은 조사인 것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반복 질문에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경찰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같은 질문을 계속하거나 그 사람이 먼저 때린 것 맞죠?처럼 특정 답을 전제하는 질문을 반복하면 진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기억은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대적인 수사면담(Investigative Interviewing)에서는
조사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기보다 당사자가 자신의 기억을 자유롭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좋은 조사의 핵심은 같은 질문을 몇 번 했느냐가 아닙니다.
자유로운 진술을 충분히 들은 뒤 필요한 부분을 구체화하고, 불명확하거나 서로 다른 부분은 다시 확인하면서
CCTV 목격자 현장자료 같은 다른 증거와 비교해야 합니다.
결국 경찰이 여러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정해진 답을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흩어져 있는 기억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실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재구성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