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신고를 하고 나서 "벌금 몇백만 원 나왔습니다"라는 통지를 받으면, 대부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옵니다. 처벌이 되긴 됐다는 안도감, 그리고 저게 전부냐는 허탈감. 그런데 정작 무서운 건 액수가 아닙니다. 벌금형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순간 그동안 가해자를 묶어두던 접근금지가 함께 풀린다는 사실을, 통지서 어디에도 써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얼마 나오나"가 아니라 "벌금형으로 끝났을 때 피해자에게 무엇이 사라지는가", 그리고 그걸 막으려면 어느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1. 내 사건이 벌금형으로 갈 사건인지부터 가늠합니다
스토킹처벌법 제18조는 스토킹범죄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지녔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법정형 상한은 낮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제 선고가 이 상한 근처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전화·문자 위주이고 폭행이나 주거침입이 섞이지 않았다면 벌금형 구간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늠하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행위의 반복 횟수와 기간, 그리고 침해의 물리성입니다. 문자 200건이 3개월간 이어졌다는 기록과 "여러 번 연락이 왔습니다"라는 진술은 같은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신고 전에 발신 날짜·시각이 찍힌 통화목록, 메시지 원본, 아파트 공동현관 CCTV 보존 요청(대개 보관기간이 짧으니 며칠 안에 요청해야 합니다)을 확보해 두셔야 합니다. 증거의 밀도가 곧 형량이고, 형량이 곧 이후 보호기간이기 때문입니다.
2. 신고하는 자리에서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를 함께 요청합니다

경찰 단계에서 나가는 것이 긴급응급조치이고, 검사 청구로 법원이 결정하는 것이 잠정조치입니다. 둘 다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와 전화·문자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신고 접수만 하고 조치를 요청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아무 제약 없이 그대로 지냅니다.
여기서 반드시 계산해 두셔야 할 것이 기간입니다. 잠정조치 중 서면경고·접근금지·전기통신 접근금지는 3개월을 넘길 수 없고, 두 차례에 한해 각 3개월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최장 9개월입니다. 유치장 등 유치 조치는 1개월이 한도입니다. 즉 접근금지는 영구 장치가 아니라 재판이 굴러가는 동안만 켜져 있는 임시 보호막입니다. 조치 결정문을 받으면 시작일과 종료일을 그 자리에서 확인하시고, 연장 신청은 만료 2주 전쯤 담당 경찰관·검사실에 먼저 연락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만료일에 임박해 요청하면 서류가 못 따라갑니다.
3. 기소 전에 피해자 의견서를 검사에게 제출합니다
2023년 7월 개정으로 스토킹범죄의 반의사불벌 조항이 삭제됐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건이 자동으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공소가 유지되는 것과 형이 무거워지는 것은 별개입니다. 합의나 처벌불원 의사는 여전히 양형에서 크게 작동하고, 그 결과가 벌금형입니다.
그래서 검사가 처분을 정하기 전, 그러니까 경찰 송치 직후가 개입 시점입니다. 의견서에는 감정 호소보다 사실을 쌓는 편이 낫습니다. 스토킹이 시작된 날짜, 연락 횟수, 직장이나 주거를 옮겼는지, 잠정조치 이후에도 우회 접촉이 있었는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면 진료 기록과 진단서. 그리고 "약식명령이 아니라 공판절차에서 판단해 달라"는 요청을 명시적으로 적으시길 권합니다. 이유는 다음 항목에 있습니다.
4. 약식명령이 날아왔다면 7일 안에 움직여야 합니다
약식절차는 법정을 열지 않고 서류만 보고 벌금을 정하는 절차입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 자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상 피해자 진술권은 공판이 열려야 작동하는데, 약식은 그 공판이 없습니다. 낮은 벌금이 불리한 첫 번째 이유가 여기입니다. 액수가 적다는 것보다, 적은 액수가 내 말을 한 번도 듣지 않고 정해졌다는 점이 더 뼈아픕니다.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고지받은 날부터 7일입니다. 그런데 청구권자는 피고인과 검사뿐입니다. 피해자는 직접 청구하지 못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담당 검사실에 즉시 연락해 정식재판 청구를 요청하고, 그 근거가 될 사정(약식 처분 이후 발생한 접촉, 새로 확보한 증거 등)을 서면으로 넣는 것입니다. 7일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우편으로 받아 며칠 흘려보내면 이미 확정입니다.
5. 벌금은 국고로 갑니다, 내 피해 회복과는 무관합니다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되면 그 돈은 국가가 가져갑니다. 피해자에게 1원도 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불리함이 나옵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돈으로 정산했다"는 감각이 남는데, 피해자는 이사비도 휴대폰 번호 변경비도 스스로 부담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스토킹범죄는 형사재판에서 곧바로 배상을 명하는 배상명령 대상 범죄 목록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제 회복은 형사조정 단계의 합의금이나 별도의 민사 손해배상 청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합의금을 받으면 그게 다시 양형을 낮추고, 벌금형으로 귀결되어 접근금지가 조기에 사라지는 구조입니다. 돈과 안전이 맞바꿔지는 셈입니다. 합의를 검토하신다면 금액보다 조건을 설계하십시오. 접근·연락 금지, 위반 시 위약벌 액수, 거주지·직장 반경 명시를 합의서에 넣고 공증까지 받아두면, 형사절차가 끝난 뒤에도 민사로 붙잡을 근거가 남습니다.
6. 보호가 꺼지는 날짜를 미리 달력에 적어둡니다

재판이 확정되면 잠정조치는 목적을 다하고 종료됩니다. 벌금형으로 빨리 끝날수록 그날이 빨리 옵니다. 징역형 집행유예라면 유예기간 동안 재범 시 유예가 취소될 위험이 가해자를 누르지만, 벌금형에는 그 압박이 없습니다. 벌금형은 금고 이상의 형이 아니라 누범 가중의 전제도 되지 않습니다. 억제력이 약해지는 지점이 명확합니다.
그러니 확정 통지를 받는 순간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접근금지 효력이 끝나는 날을 달력에 표시하고 그 전후로 출퇴근 동선이나 귀가 시간을 바꿔둡니다. 둘째, 민사 접근금지 가처분을 검토합니다. 형사 잠정조치와 달리 사건 종결에 연동되지 않습니다. 셋째, 재접촉이 발생하면 그 즉시 새 사건으로 신고합니다. 종전 사건이 벌금으로 끝났더라도 새 행위는 새 스토킹범죄이고, 이때는 반복성이 이미 입증돼 있어 잠정조치가 훨씬 빨리 나옵니다.
여기서 많이 무너집니다
가장 흔한 실패는 합의금 300만 원을 받고 처벌불원서를 써준 뒤, 두 달 만에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입니다. 잠정조치는 이미 끝났고, 새로 신고하려니 "합의했던 사이"로 취급받아 초기 대응이 늦어집니다. 합의는 하시더라도 처벌불원 문구와 접근금지 조건은 분리해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증거를 지우는 것입니다. 보기 싫어서 메시지를 삭제하고 번호를 차단하면, 차단 이후 발신 기록이 남지 않아 지속성 입증이 끊깁니다. 차단하시더라도 스크린샷과 통화목록은 별도 폴더에 백업해 두시고, 문자는 원본이 담긴 기기를 초기화하지 마십시오.
정리
벌금 액수에 분노를 쏟기보다, 그 벌금이 확정되는 날 내 접근금지가 함께 꺼진다는 사실 하나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오늘 하실 일은 담당 경찰관이나 검사실에 전화해 현재 잠정조치의 만료일이 언제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날짜를 모른 채 재판 결과만 기다리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