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난동과 같은 강력범죄 뉴스가 나올 때 댓글은 비슷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경찰이 왜 총을 못쏘냐는 식입니다. 그런데 현장 경찰관이 권총을 뽑고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권총을 격발할 때까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최소 네 개이고, 통과한 뒤에도 조사가 남습니다. 그 관문을 순서대로 뜯어보면 왜 한국 경찰의 총기 사용이 어려운지가 보입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왜 경찰관이 쏘지 않았는가"보다 "경찰관이 어떤 조건에서 총을 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1. 흉기를 들었다고 바로 총을 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의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은 대상자의 행동을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순응 → 소극적 저항 → 적극적 저항 → 폭력적 공격 → 치명적 공격
이 가운데 권총과 같은 총기는 가장 높은 단계인 치명적 공격(Deadly Assault)에 대응하는 고위험 물리력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단순히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발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지금 당장 경찰관이나 시민의 생명·신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가입니다.
문제는 이런 판단이 법정이나 사무실에서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장 경찰관은 흉기를 든 사람이 다가오는 몇 초 동안에
- 공격 의도가 있는지
-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 주변에 시민이 있는지
- 도주할 가능성이 있는지
- 전자충격기 등 다른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지
를 동시에 판단해야 합니다.
게다가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위해를 수반하는 무기 사용을 기본적으로 다른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에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흔히 보충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경찰봉, 분사기, 전자충격기(Taser) 같은 수단이 먼저 고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자충격기도 만능은 아닙니다.
전극이 제대로 박히지 않거나 두꺼운 옷에 막히면 효과가 떨어질 수 있고, 흉기를 든 사람이 이미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상황에서는 실패 자체가 치명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현장 경찰관은 “총을 쓸 만큼 위험한가”와 “총을 쓰기 전에 다른 수단을 더 시도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판단해야 합니다.
2. 총을 쏘기로 결정한 뒤에도 넘어야 할 절차가 있다

총기 사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서 곧바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총기 사용 전에 구두 또는 공포탄을 이용한 경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서는 예외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이미 총기를 겨누고 있거나 즉각적인 공격이 시작된 상황까지 경찰관에게 한가롭게 경고를 반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규 자체에도 ‘부득이한 경우’에 대한 예외가 존재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총을 쏘더라도 위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한국 경찰 실무에서는 오랫동안 가능한 경우 대퇴부 이하 등 상대적으로 치명상을 줄일 수 있는 부위를 고려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요구입니다.
야간에 흉기를 든 사람이 뛰어오거나 몸을 계속 움직이는 상황에서 작은 신체 부위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은 사격장에서 정지된 표적을 맞히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총알이 빗나가면 주변 시민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지면이나 물체에 맞은 총알이 튀는 도비탄(Ricochet) 위험도 있습니다.
경고사격 역시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실탄을 허공이나 지면에 발사하면 탄환이 어디로 이동할지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장 경찰관 입장에서 총기 사용은 단순히
“범인을 맞힐 수 있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범인을 제압하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는가”
까지 포함하는 판단이 됩니다.
3. 경찰관을 총을 쏜 순간부터 자신의 판단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한국 경찰의 총기 사용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발사 이후입니다.
총기를 사용하면 해당 경찰관은 왜 그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후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무기 사용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상황에 따라 감찰이나 수사, 민사상 국가배상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살인·상해·강도 등으로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책임을 자동으로 없애주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책임과 징계책임,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는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장의 경찰관은 몇 초 안에
“지금 총을 쏘지 않으면 누군가 다칠 수 있다”
는 위험과
“내가 총을 쐈는데 그 판단이 나중에 잘못됐다고 평가되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위험을 동시에 떠안습니다.
여기에 한국 경찰의 총기 사용을 둘러싼 핵심적인 딜레마가 있습니다.
총을 사용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면 “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고, 총을 사용해 피해가 발생하면 다시 “정말 총을 사용할 정도의 상황이었느냐”는 검증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찰의 총기 사용 문제를 단순히
“경찰관이 겁이 많아서 총을 못 쏜다”
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현장에서는 위험 수준 판단, 보충성, 경고, 위해 최소화, 제3자 피해 가능성, 사후 책임이 한꺼번에 작동합니다.
결국 질문도 조금 달라져야 합니다.
“경찰은 왜 총을 안 쏘는가?”
보다
“생명이 위험한 순간 경찰관이 적절한 물리력을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책임 구조가 설계되어 있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총기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그다음 문제입니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방아쇠를 당기는 경찰관 개인의 배짱이 아니라, 그 사람의 판단을 둘러싸고 있는 제도와 절차입니다.